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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겨진 삶을 행복한 삶으로 바꿔주신 하나님!
    이행복(가명)집사 (남, 은혜(가명)교회, 서울시 중구)

      나는 넉넉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나 서울 종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신문사와 출판업을 운영하는 등, 사업을 크게 확장하며 약간의 빚을 끌어 썼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업이 잘 되지 않아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 아버지는 다시 사업을 일으키려고 백방으로 뛰어 다니시다가, 빚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과로로 병을 얻어 급기야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시고 말았습니다.
      온 집안은 슬픔에 잠겼고, 남겨진 빚과 어린 남매들을 키우는 일이 막막했던 어머니는 자식들과 함께 죽을 결심까지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 어머니는 노점상부터 국밥집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고, 돈벌이가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셨기에 나중에는 여자들이 접대하는 술집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어려서부터 그런 환경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열 살 무렵에 어머니가 재혼을 하셨는데, 내성적인 성격에다 아버지라는 단어가 너무나 어색했던 나는 낯선 사람에게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에 적응할 수 없었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새아버지의 눈길이 너무 무서워 점점 말수가 더 없어지고 주눅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아버지의 심부름을 나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친구들을 만나 한참을 어울려 놀다가 집에 늦게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뒤늦게 아버지의 심부름이 생각나 급히 돌아왔지만, 오래 나를 기다리시던 새아버지는 화가 많이 나셔서 각목으로 나를 마구 때리기 시작하셨는데, 그동안 쌓여왔던 나에 대한 미운 감정들이 폭발한 것 같았습니다. 그때 팔을 잘못 맞아 팔꿈치를 많이 다쳤는데, 상처는 며칠이 지나니 붓고 고름이 나오며 통증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뒤늦게야 내가 아픈 것을 아시고 나를 병원에 데려가 치료받게 하셨고 마음 아파하시며 눈물을 많이 흘리셨습니다.
      나는 그 일로 새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마음 깊이 자리 잡게 되어 점점 성격이 비뚤어지고 세상마저 원망하는 사람으로 변해갔습니다.   때론 남의 집 굴뚝 밑에서 잠을 자고 며칠 동안 굶주리다가 겨우 집에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새 아버지의 구타가 따랐기에 다시 집을 나와 불량배들과 어울리곤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불량배들과의 패싸움으로 소년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렇게 한번 발을 들여놓게 된 교도소에는 그 후로도 자주 들락거리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을 믿으라는 전도를 많이 받았으나 원망과 증오로 가득 찬 내 마음은 악에 바쳐 있었기에 아무리 좋은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집행유예기간을 합한 긴 형기를 마치던 날, 교도소를 나와 어머니와 동생과 연말을 함께 보내기 위해 그토록 들어가기 싫었던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습니다.
      12월 23일로 기억되던 그날, 집으로 가던 길의 어느 교회 앞을 지날 때였습니다. 마침 교회 안에서 몇 명의 젊은 사람들이 환한 얼굴로 웃으면서 나오고 있었는데, 그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꼼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 중 한 여자가 천사처럼 보였고, 또한 빛처럼 나를 비취는 것 같은 그들의 밝은 모습에 비해 내 자신은 병들어 초라한 짐승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들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천사 같은 그녀와 그들의 웃는 얼굴이 눈앞에 교차하여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찾아가게 되었고  맨 뒤에 앉아 아기예수의 탄생부터 부활까지의 내용을 담은 성극을 보는 동안 왠지 모르게 자꾸만 눈물이 흘렀는데, 그 순간 나는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다음 주에도 교회에 올 것을 약속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후의 일주일이 얼마나 느리게 지나가는지 조바심이 났습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본 가족들은 좀 멍해 보이지만 좋아 보인다고 하며 나의 변화를 반겨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계속 교회에 나가게 된 후, 알지 못하는 힘에 이끌려 철야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철야기도를 하며 나도 모르게 새아버지를 미워한 것과 범죄를 계획한 일 등 갖가지 죄를 계속해서 회개했고, 은혜 가운데 기도하는 동안 드디어 범죄의 유혹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년 동안의 많은 우여곡절 끝에, 내가 26살 되던 해에 3살 연상인 그녀와 꿈만 같은 결혼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결혼 3년 후에는 예쁜 딸과 씩씩한 아들도 갖게 되고, 내 사업도 갖게 되었습니다. 점차로 사업은 실속 있게 잘 되어 제법 돈도 모아지는 등 새 삶을 시작한 세월은 행복하게 흘러갔습니다.
      그러나 1995년 5월, 나는 지옥으로 떨어진 것만 같은 악몽 같은 힘겨운 시간을 맞아야 했습니다. 천사 같은 사람, 나를 구원으로 이끈 사람인 내 사랑하는 아내가 폐암에 걸렸습니다  나는 평소 건강하던 아내가 폐암에 걸렸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아 망연자실했지만 정작 아내는 침착했습니다. 아내는 며칠 기도해 보더니 곧 나을 병이니 상심 말고 함께 열흘 동안 기도원에 가서 금식기도를 하자고 했습니다. 나는 아내의 말을 그대로 믿고 싶었고 아내와 함께
    강남금식기도원에 가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금식기도를 하면서 어찌나 마음에 평안함이 생기는지 아내가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어느새 떠나간 듯 했습니다. 그리고 작정한 마지막 날 저녁이었습니다. 그 날도 부르짖어 금식하며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마음을 부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 아내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네 믿음대로 영원히 너와 함께 살리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나는 정말 너무나 뛸 뜻이 기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나의 전부가 되어버린 아내가 없는 이 세상은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아멘으로 화답하면서 다음날 아내와 함께 확신을 가지고 감사함으로 기도원을 하산했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병원을 가서 재검사를 받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내의 몸은 정상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밖에는 말할 수가 없어 감사함에 그 자리에서 바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의사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이상한 듯 쳐다보았지만 아랑곳 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고쳐주신 거예요.”라며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그 후 우리 부부는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어 일 년에 몇 번씩은
    강남금식기도원을 찾고 있습니다. 그때 마다 은혜를 새롭게 부어주심을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나의 삶은 아내와 함께 주님을 위해 살아갈 것입니다. 날마다 전도함으로 감사의 제사를 드리면  사랑하는 아내를 통해서 나의 신앙을 더욱 더 견고한 반석으로 서게 하시고 이전보다 더 서로를 위해주는 마음으로 가정을 세워나가게 하시니 그 은혜를 찬양드립니다 나에게 이런 귀한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

    <정리 ·기도원 간증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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